목사내아 금학헌 목사의 기를 받아가는 숙박체험

오백 살도 넘은 팽나무가 지키고 서 있는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사의 살림집으로, 나주읍성 안에 있던 관아건축물 중 객사(客舍)인 금성관, 아문(衙門)인 정수루 등과 함께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. 건물은 일반적인 내아(內衙)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, ㄷ자형으로 된 팔작지붕 구조입니다.
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군수의 관사로 사용하면서 원래의 형태를 많이 잃어버렸으나, 최근 완전 해체ㆍ복원한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.

2009년 5월 숙박체험이 가능한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거듭난 목사내아 금학헌(琴鶴軒 :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자하는 선비의 지조가 깃든 집)은 <1박 2일>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, 전라남도에서 문화재를 활용한 우수 모범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. 목사내아 금학헌에는 역대 나주목사 중 특히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(兪昔曾) 목사와 김성일(金誠一) 목사의 이름을 딴 방이 있어 하룻밤 숙박체험으로 "나주목사의 기(氣)"를 받아갈 수 있습니다. 가까운 곳에는 금성관을 비롯한 나주읍성권의 문화유산과 곰탕의 거리가 있어 멋과 맛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.

목사님께서 하신 일
병권까지 가진 막강한 지위
"목사(牧使)"란 고려 시대에는 "지방 행정단위의 하나인 목(牧)에 파견했던 지방관"을 뜻하며, 조선 시대에는 "관찰사 밑에서 지방의 목(牧)을 다스리던 정삼품의 외직(外職) 문관"을 뜻합니다.
목은 큰 도(道)와 전략적 요충지에 두었는데, 고려 시대의 나주처럼 왕실과 관게가 있는 지방은 작더라도 목으로 승격시켰습니다.
목사는 신라 때의 군주(軍主)와 그 직위가 같았으며, 병권(兵權)을 가진 것이 중요한 특징입니다.
고려 때는 전국 12목에 목사를 두었고,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3명, 충청도에 4명, 경상도에 3명, 전라도에 4명, 황해도에 2명, 강원도에 1명, 함경도에 1명, 평안도에 2명 등 모두 20명의 목사를 두었다고 합니다.
행정 사법 군사권을 가진 목의 최고 책임자
관찰사 밑의 수령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지위였던 목사의 주된 업무로는 관할 지역의 농업 장려, 호구(戶口) 확보, 공부(貢賦 : 나라에 바치는 물건과 세금) 징수, 교육 진흥, 송사(訟事) 처결(處決) 등이었으며, 진관체제(鎭管體制 : 조선 시대에 두었던 지방방위조직)가 실시되면서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(僉節制使)의 군직을 겸하기도 했습니다.